1924년 1월, 런던 동북부의 한 산과 병원. 아이를 낳고 죽어 가던 스물두 살 산모가 병실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아버지예요!” 조금 뒤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덧붙였다. “아버지가 비다를 데리고 있어요.” 언니 비다는 18일 전에 죽었다. 가족은 그 죽음을 산모에게 끝까지 숨기고 있었다.
이 글은 영어 카드 Doris sees Vida (London, 1924)의 위층(“읽는 글”)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출처 번호·점수·등급 판정이 있는 조사 장부는 영어 카드에만 둔다. 등급: R B · V1 · I0.
무슨 일이 있었나
도리스는 스물두 살이었다. 1923년에 결혼해 아직 1년이 안 됐고, 1924년 1월 런던 클랩턴의 Mothers’ Hospital에서 아이를 낳았다. 구세군이 운영하는 산과 병원이었다. 아이는 예정보다 일찍 나왔지만 무사했다. 산모는 그렇지 못했다. 분만 중에 심한 심부전이 왔고, 의사들은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건 장소 Mothers’ Hospital(런던 Lower Clapton Road)의 정면 건물, 2018년. 1824년에 지은 주택을 병원 정면으로 썼고 병동은 뒤편이었다. 병원은 1986년에 닫혔고 지금은 주거 단지다. 1924년 당시 사진은 아니다 · Paul the Archivist,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그 병원의 산과 외과의 가운데 한 사람이 플로렌스 바렛, 당시 호칭으로 레이디 바렛이었다. 레지던트 의사 필립스가 급히 와 달라고 전갈을 보냈고, 레이디 바렛은 다른 환자들을 본 뒤 병동으로 돌아왔다. 그때 들은 말을 “직후에” 적어 두었다. 그 메모가 이 사건의 첫 기록이다.
메모에 따르면 도리스는 먼저 두 손을 내밀며 아기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했고,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물었다. 그러고는 밝게 불이 켜진 병동을 올려다보며 “어두워지게 두지 마세요, 점점 어두워져요”라고 했다. 남편과 어머니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갑자기 도리스가 방의 한 곳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무엇이 아름답냐고 묻자 “눈부신 밝음, 놀라운 존재들”이라고 답했다. 그러다 기쁜 외침처럼 말했다. “어, 아버지예요! 내가 가는 걸 저렇게 기뻐하시네요.”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오자 도리스는 아기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아기를 위해 남아야 할까요?” 그러나 곧 다시 그쪽을 보며 말했다. “못 있겠어요. 당신이 내가 보는 걸 본다면 알 거예요.” 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는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에게 보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남편을 옆으로 밀며 말했다. “저 아름다운 빛을 보게 해 주세요.”
레이디 플로렌스 바렛(1867–1945). 첫 기록자이자 증인이고, 사건 당시 이 병원의 산과 외과의였다. 촬영 연도 미상 · Wellcome Collection L0004411, Wikimedia Commons · CC BY 4.0
레이디 바렛은 곧 자리를 떴다. 그 뒤로는 수간호사 미리엄 캐슬과 어머니, 남편이 곁을 지켰다. 수간호사의 진술에 따르면, 남편이 몸을 숙여 말을 걸자 도리스는 그를 밀어내며 “가리지 마세요,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침대 반대편에 선 수간호사 쪽을 보며 말했다. “어, 비다가 있네.” 어머니는 같은 순간을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도리스가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가 날 원하세요, 외로우신가 봐요”라고 한 뒤, 같은 곳을 다시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비다를 데리고 있어요”라고 했다고.
비다는 도리스의 언니였다. 서른네 살이었고 몇 해째 병약했다. 1923년 12월 25일, 런던 동쪽 웨스트햄에서 죽었다. 그때 도리스는 이미 입원 중이었고 상태가 나빴다. 수간호사는 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고, 가족은 그 말을 따랐다. 상복을 벗고 평소 옷으로 면회를 왔다. 바깥 친구가 편지에 부고를 쓸까 봐 남편이 모든 편지를 먼저 읽고 건넸다. 도리스가 “비다”라고 말한 순간, 어머니는 그래서 놀랐다. 도리스는 그 뒤 자기들을 결혼시켜 준 목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보냈지만 목사가 왔을 때는 이미 말을 못 하는 상태였다. 도리스는 한 시간쯤 더 살았다. 마지막까지 자기가 보는 밝은 형상과 병상 옆 사람들을 함께 의식했고, 조산아를 병원에 얼마나 두어야 할지 수간호사와 의논했다.
1920년 베이컨(Bacon) 런던 포켓 지도의 동북부. ① 도리스가 아이를 낳고 죽은 Mothers’ Hospital(클랩턴, Lower Clapton Road) ② 언니 비다가 18일 먼저 죽은 웨스트햄 ③ 1923년 도리스가 결혼한 해거스턴 올 세인츠 교회 일대 ④ 어머니가 편지를 보낸 하이버리. 번호 표시는 William이 대략의 위치에 덧붙인 것이다(그림 안의 설명은 영어) · George Washington Bacon, 1920 · Geographicus,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이 이야기가 책이 된 데는 사정이 있다. 레이디 바렛의 남편은 윌리엄 바렛 경이었다. 물리학자이고, 1882년 심령연구학회(SPR)를 세운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죽어 가는 사람이 “이미 죽은 줄 몰랐던 사람”을 보는 사례를 모으고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필립스 의사에게 메모에 동의하는지 서면으로 물었고, 수간호사의 서명 진술서와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 모았다. 바렛은 1925년 5월에 죽었고, 이 사례는 이듬해 나온 책 『Death-bed Visions』 2장의 첫 사례로 실렸다.
윌리엄 F. 바렛 경(1844–1925). 이 사례를 모아 책으로 낸 사람. 1907년 출판물에 실린 초상 · James Creelman,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나는 책 바깥에서 이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잉글랜드·웨일스의 출생·혼인·사망 색인이 무료로 열린다. 거기에 1923년 4분기 웨스트햄에서 죽은 서른네 살 비다 M. 클라크가 있다. 1924년 1분기 해크니에서 죽은 스물두 살 도리스 G. 바저리가 있다. 같은 분기 해크니에서 태어난, 어머니 성이 클라크인 바저리 성의 여자아이가 있다. 1923년 2분기 쇼디치에서 결혼한 도리스 G. 클라크와 스탠리 바저리가 있다. 언니가 먼저 죽은 순서, 두 사람의 나이, 결혼과 출산의 장소가 책과 맞는다. 다만 색인은 이름과 나이와 장소만 말한다. 환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도해 · 결혼에서 책까지의 연표, 누가 어느 말을 들었는지, 비다의 죽음을 알고 있던 사람, 기록이 이어진 사슬. 영어 카드 조사 장부의 3·4·6절을 그림으로 옮긴 것으로 기록이 아니다 · William 작성, 생성 코드
tools/diagrams/DBV-GB-1924-doris.py
이 기록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이 연구는 사건이 놀라운지를 묻지 않는다. 기록이 얼마나 좋은지를 묻는다. 그 기준으로 이 사례는 꽤 좋은 편이다. 네 사람이 각자 적었다. 의사가 직후에 쓴 메모, 다른 의사의 서면 동의, 수간호사의 서명 진술, 어머니의 편지. 사건 2년 안에 책으로 나왔다. 공식 색인이 사람들의 존재와 죽음의 순서를 받쳐 준다. 기록의 질을 A부터 D까지 매기는 이 연구의 등급표로 B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도리스가 알 수 없었던 사실이 그 말 속에 들어 있었는가. 들어 있었다.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사례는 “검증 정보가 있는 사례”로 센다. 그러나 가장 높은 등급은 아니다. 두 가지가 모자란다. 첫째, 도리스가 “비다”라고 말한 순간,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어머니도, 남편도, 수간호사도 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말을 미리 날짜 있는 문서로 적어 둔 뒤 사실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뜻을 이미 아는 사람들이 나중에 적은 것이다. 둘째, 언니가 몇 해째 아팠으니 도리스가 “혹시” 하고 짐작했을 가능성을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검증 정보 등급은 세 단계 중 가운데인 V1이다.
또 하나 짚을 것이 있다. 첫 기록자가 바렛의 아내라는 점이다. 바렛은 이미 1917년 책에서 같은 종류의 사례를 다뤘고, “죽은 줄 몰랐던 사람이 보인다”는 이야기 틀은 1882년부터 영어권 심령연구 문헌에 돌고 있었다. 이 연구가 세려는 것은 “서로 접촉이 없던 문화에서 같은 이야기가 따로 나왔는가”다. 그 셈에서 이 사례는 영국 쪽 표본이 될 수 없다. 기록자가 그 이야기 틀을 이미 아는 집안이기 때문이다. 영국 쪽 표본은 심령연구학회 바깥의 기록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독립성은 I0다. “같은 구조가 따로 나왔는가”의 셈에는 넣지 않고, 검증 정보의 셈에만 넣는다.
이 사건을 특정해서 반박한 글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기가 “배제됐다”고 쓰지는 않는다. 폭로가 없다는 것과, 이해관계 없는 조사자가 확인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다르게 설명하면
- 기억이 다듬어졌을 수 있다. 레이디 바렛의 메모는 “직후”라지만 날짜가 없다. 수간호사와 어머니는 그 말의 뜻을 안 뒤에, 바렛의 요청을 받고 썼다. 진술 사이의 작은 차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언니가 “3주 전”에 죽었다는 말과 “2주 4일 전”이라는 말, 메모의 “남자아이”와 색인의 여자아이, 책의 남편 머리글자 “W.”와 색인의 “스탠리”.
- 누군가 말해 줬을 수 있다. 가족의 숨김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병원 직원 가운데 누가 알았고 누가 환자 곁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다.
- 우연일 수 있다. 죽어 가는 사람이 먼저 간 가족을 본다고 말하는 일은 흔하다. 언니는 오래 아팠다.
- 고른 이야기일 수 있다. 바렛은 사후 생존을 지지하는 사례를 모아 책을 냈고,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 쓰지 않았다. 첫 보고자는 그의 아내였다.
- 죽어 가는 뇌의 일일 수 있다. 산후 심부전, 산소 부족. 밝은 빛과 가족의 모습 자체는 그렇게 설명된다. 다만 “언니”라는 세부는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기록은 “의식은 죽음 뒤에도 이어진다”는 가설과 양립한다. 그러나 그 가설만 남기지는 못한다. 곁에 있던 사람이 아는 사실을 말한 사례는 늘 그렇다. 몰랐던 죽음은 보통 가족이 아는 죽음이다.
출처
이 글의 모든 사실은 영어 카드 Doris sees Vida의 조사 장부 3절·4절에 출처 번호와 함께 있다. 주요 출처는 다음과 같다.
- Barrett WF. Death-bed Visions. London, 1926, pp.10–14 — 레이디 바렛의 메모, 필립스 의사의 동의, 수간호사 캐슬의 진술서, 어머니 클라크의 편지를 전재. Wellcome Collection b29813992에서 전문과 쪽 이미지가 공개돼 있다(열람 확인).
- 잉글랜드·웨일스 GRO 출생·혼인·사망 색인(FreeBMD, 2026-10-22 검색) — 비다·도리스의 사망, 아기의 출생, 1923년 혼인.
- 미확인: All Saints Haggerston 교구지 1924년 2월호(디지털 사본 없음), 1924년 신문 보도(무료 아카이브 접근 불가).